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 (2017)
이동진의 라이브톡 (중계)
@cgv강변
19:05 -
4/5
이 날은 꽤 쌀쌀했다. 일본에서 돌아와서 처음 찾는 한국의 영화관이었다. 더군다나 이동진 평론가의 라이브톡으로 예매를 했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덕후로서) 설렜을 밖에.
영화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한번에 이 느낌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알마의 행동을 '하아-?'이런 심정으로 본 게 많아서. 영화는 짧게 말하면 이상한 남자와 이상한 여자의 사랑인데, 그 이상한 게 너무 이상하고 또 그로테스크한 면도 있어서.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듣고 또 혼자 곱씹으면서 감상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좋았던 것들도 있다. 일단 고급스럽다. 속된 말로는 깔쌈하다. 첫 신과 마지막 신을 다시 생각해 보면 또 그게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고(우아하게 시작해서 우아하게 끝난달까). 물론 그 중간에는 전혀 우아하지 않은 것들이 많기는 한데. 그리고 촬영이, 사실 테크닉적으로 엄청 과시한다는 느낌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위가 느껴진달까. 나선계단을 올라가는 인물을 어깨 뒤쯤에서 쫓아가는 카메라는 어쩐지 사려깊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알마가 레널즈에게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그 둘이 싸우는 장면역시 카메라가 딱히 동적이지 않은데도 긴박하고 살벌해서 인상에 길게 남는다(이 부분은 연기도 특히 좋다. 둘 다 소위 약빨았음). 또, 뉴 이어 파티로 알마를 찾으러 간 레널즈가 파티를 관망하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헤매고, 알마를 찾고, 데리고 나오기까지의 신이 내가 뽑는 최고의 신. 차가우면서 따뜻했고, 밝으면서도 어두웠고, 사려깊으면서도 냉정한 느낌이었다. 그 부분의 조명도 딱 좋았고. 마치 환상 또는 꿈 속처럼 일부러 밝게 해 놓은 것 같아서. 그와 버금가게 좋은 신은 처음으로 독버섯을 먹고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어머니의 유령과 알마를 한 신 안에 같이 놓고 느리고 정적으로, 그리고 수평적으로 카메라를 움직여서 촬영한 부분. 진짜 섬뜩했다. 그 순간만큼은 공포영화로 탈바꿈하는 듯한.
이 영화가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데에는 음악도 큰 역할을 한다. 스트링 연주가 일품인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반복해서 쓰이는데 그것만으로 너무 아름다워서 귀를 빼앗겼다. 그 스코어는 때로 장면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대부분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것 역시 흥미로웠고. 또 독버섯을 넣는 부분에서는 엄청 엄중진지비극st 스코어를 쓰는데 그게 특히 두 번째로 독버섯을 먹이러 채취하러 가는 씬에서는 정말 크게 처리를 해놓아서ㅋㅋㅋㅋㅋㅋㅋ 순간 블랙코미디적이라고 느꼈다. 웃음 나올 뻔함. 아니 또 독버섯이냐- 이런 느낌. 근데 그렇게 블랙코미디를 키워드로 놓고 보면 이 영화 자체를 하나의 블랙코미디로 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여성 캐릭터에 집중해서 보았을 때는 더더욱 흥미로워진다. 참 이런 여성 캐릭터 (어떻게 보면 짜증날 정도로 토를 다는) 저는 너무 좋고요? 계급적으로 위인 레널즈에게 전혀 쫄지 않고 계속 토 다는 거 너무 귀여웠음. 시릴한테 고집부릴 때는 (나는 알마<<<<<시릴이 더 캐릭터적으로 이해랄까 이입이 '그나마' 잘 되었으므로) 아니 왜 저래... 싶기도 했지만 그건 저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오히려 시릴은 그런 점으로 알마를 좋아하는 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릴 진짜 파워와 여성미 뿜뿜^^77 그렇게 동생한테 토달고 종종 자신한테도 토다는 사람인데 겉으론 그렇게 모를 표정으로 (때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쳐다봤으면서 나중에 나는 걔 맘에 든다니(fond of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 거였냐고요,,, 이동진 평론가가 어떻게 보면 그 둘은 이 영화에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그게 이해가 가더라. 아니 오히려 매우 적절한 표현일지도.
또한 흥미로웠던 이동진 평론가의 표현이 이 영화는 알마가 어머니, 또는 집을 대체하거나 또는 아예 폐기하고 자신의 것을 새로 세우는 이야기같다고 했는데 그것도 고개가 끄덕여졌다.